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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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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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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행 묘소(曾坪 辛景行 墓所)
  • 종별충청북도 기념물
  • 소재지증평군 증평읍 남차리(숯고개) 산3-1
  • 지정일2004-09-17

소개

증평읍사무소에서 증천교에 이르러 이곳에서 청원군 초정 방면으로 540번 지방도를 따라 3.3㎞ 쯤 가서 죽리초등학교 직전 덕상교에서 공수부대를 지나 2㎞의 거리에 남차1리 마을 맞은편 산기슭에 사당과 묘소가 있다.

이 묘소는 봉분의 크기가 가로 5m, 세로 5m, 높이 2m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 묘비, 망부석, 문관석이 있는데 동자석은 2005년에 분실되 새로 조각해 설치했다. 묘소 아래에는 1969년 10월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묘소 입구 길가에는 2005년 4월에 다시 신도비가 건립됐다.

신경행은 조선 선조 6년(1573) 진사시에 합격했고 4년 뒤 별시 문과에 병과 9인으로 급제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고 그 공으로 선조 26년(1593)에 한산군수가 됐다. 선조 29년(1596)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청난공신 3등에 책록돼 영성군에 봉해졌다.

그 뒤 공주목사, 서흥부사, 장흥부사, 병조참의, 동부승지, 남원부사를 지냈고 선조 41년(1608)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으며 사후 예조판서에 추증됐다. 신경행은 광해군 때 맹롱(盲聾)으로 퇴관 귀향해 지금의 증평나들목(IC) 부근 여암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반계(磻溪) 위에 조은정을 짓고 만년에 이신양성했다고 한다.

또 월은동의 연모사에 운수정을 짓고 이곳에서도 낚시를 즐기며 수양을 하다 77세로 숨졌다. 신경행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숙종 14년(1688)에 청안현 칠보산 아래 군방동에 사당을 건립, 영조 36년(1760)에 군방서원으로 승격됐고, 신경행과 그의 8대조인 고려시대 태학자 덕재 신장을 추봉, 병향하고 있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철거하고 원 위치에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영당에 신경행 유상(遺傷)과 청난공신책록 등 유품이 보존되고 있다. 또 1922년에는 그의 후손들이 수현(壽峴)에 청연사를 건립해 해마다 음력 정월 7일 향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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