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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증평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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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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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호 생가(延秉昊 生家)
  • 종별충청북도 기념물
  • 소재지증평군 도안면 산정길 21(석곡1리 555)
  • 지정일2002-01-11

소개

도안면사무소에서 충주 방면 36번 국도를 따라가다 우측에 있는 도안농공단지관리사무소 앞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50m 지점에 이르면 산정마을 뒤 야산 기슭에 있다.

이 집은 1910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초가집으로 건립됐다. 그 뒤 지붕 등이 변형됐다가 198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고, 1996년과 1998년 생가보수사업으로 영당과 삼문이 건립됐다.

연병호는 청안 중명학원에서 신학문을 공부하고 맏형 병환이 1910년 경술국치를 통분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망명했다.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귀국해 조국 해방을 협의하고 같은 해 12월 29일 비밀조직인 청년외교단이 수색돼 대구감옥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 7월 출감 후 재차 망명해 이름을 병준에서 병호로 개명하고 독립혁명당을 조직했다.

1937년 1월 7일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국내에서 조국 해방을 맞이해 임시정부 환국준비위원회를 발족, 영접부장으로 추임됐다. 1946년 7월 한독당 창당을 발기해 중앙위원 겸 훈련부장, 애국선열 사적조사위원장에 추임됐다. 1945년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선거에 괴산에서 입후보해 당선, 제헌국회의원이 됐고 그 뒤 재선의원이 됐다. 1963년 1월 26일 향년 70세의 일기로 타계했고 사회장으로 장례 후에 석곡리 선영에 안장됐다. 이후 1976년 10월 국립묘지 이범석묘 옆에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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